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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9. 5. 09:30 - Tech story

중일전쟁의 발단이 된 노구교 사건과 마르코폴로의 연관성은?

최근 중국과 일본이 계속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데 최근 중국의 국력상태로 볼때 일본이 강하게 하기 힘들것 같은데 일본도 대등하거나 혹은 더 강하게 중국에 대응하는 분위기입니다. 


이러한 일본의 태도에 대해서 일부에서는 과거 중일전쟁에서 승리한 경험을 바탕으로한 심리적 우월감이 작용했다고도 하네요. 참.... 


과거 중일전쟁의 직접적인 발단이 된 사건이 바로 "노구교 사건" 입니다. 노구교 사건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노구교는 중국 베이징으로 연결되는 전략적 거점이 되는 다리였습니다. 


일본군은 서쪽 중국 국민당군은 동쪽을 관할하고 있었는데 1937년 7월 야간훈련을 하던 일본군 1명이 실종되었다가 20분만에 복귀했습니다. 그런데 일본군은 수색을 하겠다면서 중국군 관할지역에 들어가려고 했고 중국군이 거부하자 전투가 벌어진것입니다. 


일본군이 노구교를 결국 장악하게 되었고 일본 본토에서는 이사건을 계기로 전면전을 결정하게 됩니다. 실제 전투를 벌여보니 중국 국민당군의 전력이 형편없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노구교를 서양에서는 마르코폴로 다리라고 부릅니다. 정말 뜬금없죠~ 왜 마르코폴로 다리라고 할까요? 이것은 마르코폴로가 이다리를 자신의 저서인 동방견문록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고 극찬을 하면서 그냥 발음이 힘든 루거우차오(노구교)라고 부르지 않고 마르코폴로 다리라고 부른것이 계기가 된 것 입니다.


당시 서양권에서는 동양권 국가에 대한 관심도가 그리 크지 않았던 모양입니다.